일본 교토의 조선인 마을 우토로, 그 마을의 희망과 좌절의 10년을 담은 영화,
" 아름다운 게토(김재범감독)" 공동체 상영을 제안드립니다.

<아름다운 게토>를 제작하신 김재범 감독님의 소개 글입니다.
일본 교토의 조선인 마을 우토로
- 그 마을의 희망과 좌절의 10년을 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게토>(2009, 95분)
얼마 전 정태춘의 노래 <우리들의 죽음>을 얼핏 들었습니다.
꽤나 오래 전 노래인데 여전히 가슴 할퀴고 지나가는 가사였습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할 '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토로>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을에 촬영을 하러가면서 알게된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 곳에 가면 버림받은 시간들이 고여있는 작은 우물이 있다..." (홍일선의 시 중에서)
실제 가보니 여러가지 사연과 역사와 멸시와 무관심이 겹겹이 쌓인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시간들'이 마을 곳곳에 우물처럼 남아있었습니다.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영화를 소개하려다보니 쑥스럽기도하고 객관성이 결여된 듯 하여 몇 차례 상영회 할때 먼저 보고간 기자들의 글을 대신 올립니다.
2~3개월 전에 본 사람들의 영화평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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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기만 한 소개의 글입니다.
함께 나눠져야 할 짐을
스스로 떠메고 가고 있는 젊은 감독의 어깨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YMCA 생명평화센터>는 역사를 현재에 간직하며 미래를 꿈꾸는 평화의 일꾼들인
전국YMCA와 회원, 단체들에게 우토르 마을의 10년 이야기 <아름다운 게토>
공동체 상영을 제안드리며, 부탁드립니다.
전국YMCA 회원모임이나 교회 공동체, 학교, 지역 문화행사, 단체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재범 감독은 보다 많은 분들과 우토르의 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함께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공동체상영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공동체 상영을 원하시는 분들이나 단체는 아래의 연락처를 참고하시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공동체 상영 방법
1. 영화 상영 (96분)
2. 감독과의 대화 (현지 사정에 따라 시간은...)
* 주관 단체에 따라 사전행사로 간단한 노래공연 등을 기획할 수 있습니다.
* 참여인원은 상관이 없습니다만, 가능하면 50명 규모 이상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공동체 상영비가 있습니다. 300,000원
-. 신청방법
<아름다운 게토> 자세히 알기 http://cafe.daum.net/beautifulghetto
<아름다운 게토> 상영신청
-. 아름다운 게토 카페 http://cafe.daum.net/beautifulghetto
-. 문의 및 신청 : YMCA 생명평화(이윤희), 지금의 페이지에
댓글이나 멜(c-forum@hanmail.net), 전화(02-754-789-4)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한겨레21 2009.01.02 제742호]
9년6개월은 많은 일이 가능한 시간이다. 그것은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연인이 부부가 되는 시간일뿐더러, 필생의 사업을 도모해 마침내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시간 동안 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다큐멘터리만 찍는 김재범(42) 감독은 96분짜리 영화 하나를 만들었다. 9년6개월 만이다.
지난 12월14일, 일본에서 첫 시사회가 열렸다. 마을 근로자복지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영화를 봤다. 같은 시각, 일본 우익단체 회원 20여 명이 확성기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조선인은 조선 땅으로 돌아가라.” 반세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조선인은 그저 조선 땅에서 잘 살아야 한다고 그들이 진작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1년, 일제는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2천여 명의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왔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공사는 끝났지만 1300여 명의 조선인은 방치됐다. 말 그대로 풀과 나무, 그리고 흙을 모아 하늘을 겨우 가리고 살았다. 그 조선인들의 동네가 바로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다. 군수기업체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닛산자동차가 그 땅을 서일본식산에 팔면서 재개발사업이 추진됐다. 1989년 우토로 주민들에게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긴긴 법정투쟁이 벌어졌지만,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주민들은 최종 패소했다.
김 감독은 패소 직전인 99년 6월부터 <아름다운 게토> 촬영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조선인 징용자 마을의 비극적 최후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게 9년을 넘겼다. 그동안 김 감독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서울 대학로 주점에서 돈을 모아 경비를 마련했다. 1년에 한두 차례 우토로를 찾아 일주일 이상 머물렀다. 30~60분 분량의 촬영 테이프만 250개에 이른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가 초등학교 5학년 딸에게 묻는다. “집이 철거당하면 넌 어떻게 할 거니?”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아이가 답한다. “그럼, 친구네 집에나 가야지.” 9년이 지나 갸름했던 어머니의 얼굴엔 살집이 붙었다. 아이는 스무 살 대학생이 됐다. “우토로엔 할머니·할아버지만 남았어. 우리 세대는 별 관심이 없지. 우리한텐 우토로만이 아니라 이세다초 전체가 고향이야.” 어머니는 흐르지도 않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아무 말이 없다.
그동안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조선인과 결혼해 우토로에 살던 일본인 할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김 감독이 눈물을 삼킨다. 말을 잇지 못한다. 촬영 시작 무렵 그를 매혹시킨 것은 주민들의 생기와 활력이었다. 다들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였다. 유럽의 유대인처럼 ‘게토’에 격리당해 살면서도, 그들과 달리 궁핍에 찌들지 않고 오히려 생의 활력으로 넘쳐나는 우토로 주민의 ‘아름다움’이 김 감독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이제 우토로도 말린 오얏처럼 쭈그러들고 있다. 세월 때문이다. 99년 당시 320여 명 정도 됐던 주민이 지금은 200여 명으로 줄었다. 아이들은 젊은이가 되어 직장과 배필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지난해 절정에 이르렀던 세간의 관심도 줄었다. “우토로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아는 거죠.” 2005년부터 우토로국제대책회의와 아름다운재단, <한겨레21> 등이 우토로 땅 매입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2007년 11월엔 국회에서 30억원 지원을 의결했다. 모금액까지 더해 44억여원이 마련됐다. 그러나 토지 매입은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정부 예산은 아직 한 푼도 우토로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우토로 현지에서 재단법인을 만들어 정부 지원금을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그 배경에는 이 지역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총련계 활동가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불신이 있다. 그러는 동안 환율이 올라 땅 매입 비용은 애초 44억원 규모에서 58억원까지 치솟았다.
9년6개월은 많은 일이 가능한 시간이지만, 결국 우토로 주민들에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그리고 민단과 조총련 모두 그들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했다. 그러고도 살아지는 삶의 기록이 <아름다운 게토>에 담겨 있다.
김 감독은 내년 2월 초까지 전국을 다니며 ‘공동체 상영 방식’의 시사회를 할 생각이다. “이 다큐를 완성하기까지 발로 걸어온 게 아니라, 무릎으로 기어서 온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건” 가서 영화를 보여줄 생각이다. 후원금 모금과 다큐 관련 문의는 아름다운 게토 카페(cafe.daum.net/beautifulghetto)로 하면 된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기사원문보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40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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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새해 우토로 주민들의 가장 큰 絶望은 그들 잔등 뒤에 있다
불과 2년 전,
2007년 10월 그들은 希望의 한 가운데 있었다 <寒國 정부, 우토로 지원금 30억원 책정>
韓國의 다른 이름
'어름사니' 라고 하던가?
絶望과 希望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다
광대도 아니고 남사당도 아닌 그들...
누가 그들을 아슬아슬한 줄 위에 올려놓았는가?
식민지 백성이란 아픔을 가지고 줄 위에 올려놓여 있는 그들을 밑에서 줄을 흔들지는 말아야한다
타의에 의해 줄 위로 올라갔다면 내려올 수 있게 사다리를 마련해 주던가,
줄 저쪽 건너편 기둥에서 조심조심 잘 건너오라고,
겁내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냉큼 이쪽으로 건너오라고 응원이라도 해주어야 할 일 아닌가?
그들은 絶望과 希望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2007년 말 30억원 지원 결정을 했으나 2년이 지나도록 집행도 못하는 한국 정부에 기대할 수 있을까?
몇 년 동안 열심히 활동해준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에 기대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재단의 근 3년에 걸친 모금운동에 동참해준 한국 국민들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명색이 9년간 우토로를 기록해 왔다는 알량한 영화감독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그들의 選擇은 어렵다
問題가 어려워서 답을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選擇의 폭이 좁아서, 좁아도 너무 좁아서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도 항상 선택의 延長線 상에 있다
매 瞬間 선택하며 살아야 하고, 적중률이 높지 않아도 혹은 높지 않기 때문에
단답이 아니라 복수의 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현명한 선택을 했거나 複數의 답 중에 다행히 正答이 있다면 다행인데 글쎄...
우리 까페 회원인 낫살에 의하면
" 재판 과정에서 우토로 토지의 時效 取得이 인정되지 않았던 이유는,
30 여년 전에 주민들이 닛산을 상대로 토지를 자신들에게 賣却해 달라는 '요망서'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오히려 닛산의 토지 所有權을 스스로 '인정'한 法律行爲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회원인 오가와는 말하기를
" 우토로 주민들이 살아온 50년은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내가 결혼했고 내 아들이 결혼해서 손자가 생긴 그런 시간이다. 그러니 우토로의 50년을 생각한다면 이곳을 없애버리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 <아름다운 게토> 중에서
그러나 그런 意味들이 그런 價値들이 존중받을 수 있을까?
자기가 選擇했으면 그것에 責任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그 선택은 다른 餘地가 있으면서 하는 선택을 의미한다
다른 여지가 없는 선택에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걸까?
요즘 가끔 군위안부나 징용에 '강제'란 말 대신 '반강제'라는 용어가 登場한다
그래 '반강제'라고 치고 半이면 나머지 半은 뭐야?
그 나머지 半은 누가 선택한거고 누가 책임지는거지?
힘 없어서 나라를 빼앗긴 大韓帝國인가?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전쟁판을 키운 日本軍部인가?
내 생각에 노름판하고 전쟁판을 키운 놈들은 나쁜 놈들이다
한 놈이 판쓸이 할 때까지 가는 거다
그 판에 참여한 자들의 밑천이 다 떨어져야 끝나는 거다
승자는 하나다 머리가 좋아서 이겼든, 배짱이 두둑해서 이겼든 승자는 하나다
승자 하나 외엔 모두 패자인 게임, 재미없다
준우승도 있고 격려상도 있고 아차상도 있고 그러면 재밌지 않을까?
그러면 1등 못한 놈도 덜 아쉬워하고 덜 분하고, 1등 한 놈을 덜 미워할텐데....
이래저래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그리 희망차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