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번째 이야기

저자 박노자 |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책소개

  • 박노자의 눈! 다시 대한민국을 읽는다!

    실업률은 갈수록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은 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안으로는 정부와 맞서는 시위대로, 밖으로는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외나무다리 위에 서 있는 대한민국. 과연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당신들의 대한민국 1,2>의 저자 박노자는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의 원인을 주류세력이 이끄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찾고, 오른쪽으로만 향하는 그들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저자가 말하는 공공성과 복지로의 대전환을 위한 왼쪽, 그 왼쪽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부의 정책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이 책은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번째 이야기로 저자가 지난 2006년부터 여러 지면에 써온 칼럼과 개인 블로그 ‘박노자 글방’에 올린 글을 한데 묶어 ‘복지국가로서의 미래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과 ‘한국 진보 정치’에 대한 폭넓은 시선,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다. 현 정부와 한국 사회에 대한 저자만의 거침없는 입담과 날카로운 비판이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본문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가시밭길, 하지만 갈 수밖에 없는 길>에서는 한국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개혁이 아닌 혁명의 시급함을 시작으로 저자의 8가지 혁명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2부 <공포공화국을 작동시키는 톱니바퀴들>에서는 KTX 여승무원의 불법해고, 삼성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등 돈과 권력의 말없는 폭력에 맞서는 그들의 투쟁을 통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로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 <정신의 거세에 맞서는 냉철한 시선>에서는 세계 각국의 선사례를 통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에 대해서도 충분한 주의를 주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이 책은 사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이면서도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저출산 문제를 시작으로 불합리한 비정규직법, 양육ㆍ교육의 문제점, 이민에 대한 잘못된 사회인식과 배타적 태도, 수출과 토건 위주의 경제개혁 등을 현 사회적 이슈를 통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어렵게만 생각하고 애써 외면해왔던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저자소개

  • 박노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연히 TV에서 본 북한 영화 <춘향전>을 통해 ‘꼬레야’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한국 고전 소설 번역판을 읽으며, 한국에 대한 동경을 키운다. 1991년 고려대학교에서 3개월간의 짧은 유학 생활을 한 후, 1996년 경희대학교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거쳐 2000년부터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래 이름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지만 2001년 스승인 미하일 박 교수의 성을 따르고,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 ‘노자(露子)’를 붙여 한국인 ‘박노자’로 귀화한다.
    한국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승열패의 신화』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나를 배반한 역사』『박노자의 만감일기』 등의 저술 작업과 매체 칼럼을 통해 우리가 알고도 애써 외면하려 했던, 혹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 곳곳의 은밀한 배타성, 사대주의가 가미된 인종주의적 이중 잣대, 국가주의적 군대문화 등에 대한 내적 성찰의 길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번 책은 지난 2006년부터 여러 지면에 써온 칼럼과 개인 블로그 ‘박노자 글방’에 올린 글을 묶어낸 것으로, ‘복지국가로서의 미래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과 ‘한국 진보 정치’에 대한 폭넓은 시선,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다.

목차

  • 프롤로그 -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는 과거로 돌아간다

    1부 가시밭길, 하지만 갈 수밖에 없는 길

    -한국에 진보정당이 꼭 필요한 까닭

    가난한 사람들이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좌파 민족주의'와의 거리두기
    젊은이들은 왜 등을 돌렸을까
    한국인, 정말 보수적인가
    한국에서 계급 정당을 하기 어려운 이유들
    새해를 앞두고 부르주아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깨닫다
    이명박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의 미망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국가 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다
    계급적 투표가 절실하다

    -혁명이냐 개혁이냐

    비겁한 개량주의자(?)의 고백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싸움터이다
    '독재 타도'를 넘어선 진짜 시민사회의 필요성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을 버려라
    혁명이냐 급진적 개혁이냐
    '이론'의 기준은 현실과 실천이다
    나의 혁명론 1 - 자발적 동의의 양날
    나의 혁명론 2 - 개인적 반란자들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나의 혁명론 3 - 혁명의 조건
    나의 혁명론 4 - 반란의 핵, 세계의 준주변부
    나의 혁명론 5 - 2009년은 반란의 해가 될 것인가
    나의 혁명론 6 - 나라가 망해도 혁명은 없었다
    나의 혁명론 7 - 자기 상품화를 즐기는 인간들?
    나의 혁명론 8 - 결론을 대신하여

    2부 공포공화국을 작동시키는 톱니바퀴들

    -우리들의 마음 관리자, 자본의 폭력

    여승무원들에게 절을 바친다
    내가 왜 자본주의를 혐오하는가
    강성 노조가 국민 경제를 좀 먹는가
    KTX 여승무원, 그리고 허울 좋은 '민주화'
    개인의 경쟁력 vs. 개인의 생명력
    삼성, 우리 마음의 '관리자'
    끝내 미국에 가지 않은 이유
    광우병 논란의 뿌리, '광(狂)개발병'
    자전거형 사회·경제 모델
    가난뱅이는 죽어도 싼가
    한국, 발 붙이고 싶어도 붙일 데가 없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위대한 쿨함'의 제국, 만세!

    -국가의 폭력, 일상의 폭력

    더 많은 인권이 필요하다
    '말을 잘 안 듣는 아이'을 위하여
    우리에게 없는 것, 일터 민주주의
    '북방 사극' 속의 '페니스 파시즘'
    한국은 왜 이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가
    '무지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양심적 병역 거부권, 더 많은 투쟁이 필요하다
    애써 외면하는 탈남의 행렬
    서울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청소부와 장관을 동등하게 대하기
    서구인들은 정(情)이 없다고?
    공권력은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 장사' '부처님 장사' 하는 이들에게

    배제와 차별이야말로 '지옥'이다
    왜 한국 기독교는 참회하지 않나
    교회, 장기적 보수화의 일등공신
    한국 종교인들은 왜 낙태에 반대하지 않나
    부처님은 죽이라고 했는가
    평화의 아들이 전장에 나가도 되는가

    3부 정신의 거세에 맞서는 냉철한 시선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가

    탈민족 담론의 문제점
    '건국절' 궤변을 반대하는 이유
    긍지를 가르치겠다는 뉴라이트의 역사관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거시적 단상

    -다시 대듦의 정신이 필요하다

    외국 저널의 숭배, 지식 권력의 신비화
    페렐만이 괴짜라고?
    한 러시아 지한파 지식인의 비극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
    세계적 대학을 만들자면
    오리엔탈리즘의 현주소
    이놈들아, 나를 매장시켜봐라!
    신자유주의 한국, 대학이라는 이름의 폐허

    -주변을 보는 성찰적 시선

    한반도 생존의 길
    일본의 우경화와 우리들의 우경화
    용서할 줄 아는 것도 '힘'이다
    무소불위의 단어, '피해자'
    독일에서 '반일 감정'을 사색하다
    중국 독재에 대한 논쟁
    역사의 ‘진보’는 늘 인간의 '선'인가
    '신성한 국토', 20세기 피비린내의 산물
    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이 하나된 이스라엘의 위험성
    대한민국과 그리스 젊은이들의 반란
    미 제국 패권의 몰락의 속도
    '착한' 오바마와 '착할 수 없는' 미국 대통령
    대공황의 법칙들

책속으로

  •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우리의 자손들이 장차 유치원 시기부터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해 ‘무한 경쟁’에 몰입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를 배려해주고 도와주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것인지는 지금 우리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친 우리 상황에서는, 비시장적 사회와 같은 궁극적 이상은 고사하고 일반 대중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한 복지 자본주의만이라도 성취하려면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배계층에게는 왼쪽으로부터의,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계속 넣어야 한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과 ‘왼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크게 봐서 동의어이다. ‘무한 경쟁주의’의 지옥에서 ‘왼쪽’으로의 행진만이 우리의 미래다. 현 위치에서 정지해버리는 것은 과거로의 퇴보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한국적 상황에서 재벌 대표자들의 시장주의적 통치는 ‘경찰주의’, ‘공안 정국 조성’, ‘남북 긴장 조장’, 그리고 끝없는 ‘밑’에 대한 폭력을 의미할 것이고, 결국 과거의 폭력적 통치로의 역행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가 이를 저항없이 받아들인다면 나중에 탓할 데라고는 우리 자신밖에는 없다. 한 국민은 그 국민의 자질에 맞는 사회 체제와 정부를 갖게 돼 있다는 격언이 아무리 진부하다 해도, 근대 정치학은 이 말 이상의 진리를 아직도 산출하지 못했다.
    - pp.22~23, 프롤로그 중에서

    한국에서 대중적 진보 정당을 한다는 것은 가시밭길이지만 꼭 가야할 가시밭길이다.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소수’로 존재해도 좋다. 그 소수로부터의 압력마저 없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보다 더 야만적인 ‘중간급 소제국’이 될 것이다. - pp.43~44

    그들(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말하는 ‘개혁’이란 뭔지 늘 궁금했었는데, ‘햇볕 정책’ 이외에는 대체로 각종 악법(국가보안법 등)을 폐지하는 것, 관료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시키는 것(각종 토착 비리 척결), 그동안 이런저런 월권행사를 당연시해온 각종 대자본(특히 삼성?조중동)에 대해 국가가 적당힌 견제를 가하는 것,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는 것(‘거품 터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단계적 땅값 내림세 유도, 투기 방지책) 정도라 하겠다.
    뭐, 발상이야 좋고, 나도 하등의 반대가 없다. 그러나 이 자유주의적 ‘개혁론’의 기본적 문제점이란, ‘자유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이상, 앞에서 나열한 아주 ‘온건한’ 목표들도 사실상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슬픈 현실에 있다. ‘온건한 자유주의적 노선’마저도 사실상 ‘자유주의’보다 더 진화된 (사회주의적?사민주의적) 세력들만이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게 ‘한국적 정치’의 재미있는 역설이다. - p.53

    노르웨이의 노동당이나 스웨덴의 사민당은, 과연 저들의 지배자들을 찬양하면서 무상 교육과 의료 등의 엄청난 양보를 따낸 걸까? 천만의 말씀! 북구의 부르주아들이 대중의 급진화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보다 온건한 사민주의자들과의 ‘동상이몽적 동맹’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산주의자들과 경쟁해야 했던 1930∼1940년대의 북구 사민주의자들은 말년의 여운형(1886~1947)이나 조봉암(1898~1959)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에 북구의 지배층이 불가피하게 양보를 해서 복지 시스템의 건설에 동의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주류에 위험한, 불온한 흐름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중간 지점’에마저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타결될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먼저 부르는 게 흥정의 원칙이 아닌가? - p.72

    아이를 키우면서 오슬로에서 사는 처지인지라 이쪽의 아동들의 세계를 꽤나 자주 접하게 돼 있는데, 절감하는 것 하나는 아이들이 벌써 두세 살부터 일종의 ‘유아 자본가?재산가’로 키워진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애정을 주는 것보다 장난감을 줌으로써 아이를 달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껴서인지 아이에게 자주 선물을 사주는 게 의례화되어 있고, 또 유아용 완구 산업과 유아 문화 산업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에 - 예컨대 포케몬 만화가 새로이 나오는 대로 포케몬 관련 새로운 완구도 곧 출시되는 등 - 아이들이 완구에 대단한 의미를 두어 ‘완구 수집가’가 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다. 게다가 가시적인 경쟁의 이미지가 강한 이미지 자본주의 사회인지라 아이들도 완구를 누가 더 많이 갖고 있는가를 가지고 경쟁을 한다. 그래서 나도 내 아이에게 ‘벤텐(그 무슨 ‘우주 전쟁’ 영웅인지 뭔지 어쨌든 아주 파괴적인 이미지의 주인공임)’을 사달라는 당부를 늘 받아, “사람을 죽이는 게 나쁘다, 이런 완구를 사면 너도 결국 불행할 것이다”라는 걸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면서 산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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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노자의 새 책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가 출간됐다. 지난 2006년 이후 신문과 잡지 등의 매체와 박 교수의 개인 블로그에 써온 글을 추려내 엮은 이 책에서 박노자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공공성의 한국’ ‘복지국가로서의 한국’으로 가야만 하는 ‘한국 진보 정치’의 현재와 방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다.
    박노자가 가진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현재의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데 있다. 아직도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꼽는 이들이 가장 많으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50~55퍼센트로 고정화되어 있는 한국은, 자본주의(돈)가 나라의 제1 종교가 된 지 오래며, ‘돈’ ‘성공’ ‘성장률’ ‘땅값’에 대한 신앙이 뿌리 깊게 내린 ‘무한경쟁’의 왕국이다. 설상가상 이명박 정권의 등장에 따른 수출?토건 경제로의 올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 공안 정치의 부활, 적대적 남북 관계로의 회귀 등과 세계 경제의 공황적 상황은, ‘복지 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전망을 절망하게 한다. 주목할 것은 MB 정권의 실정은 현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그것이 아무리 최악이라고 해도) 하나의 변수일 뿐이라는 박노자의 관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MB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갑자기 밝아질 리는 결코 없다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상식’의 근거를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MB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을 멍들게 하는 것은 대통령”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은 그나마 국민의 손으로 선출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영혼을 상실한 검찰과 사법 권력은 어찌할 것인가? 정권이 교체된 후 ‘코드’에 맞게끔 검찰총장을 인선하고, 대법관을 추천한다고 해서, 권력친화적 사법 시스템의 고질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부자들의 독식이 노골화되어가는 고등 교육 시스템과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소위 명문 대학의 ‘대학업자’들, 하나님과 부처님을 팔아 치부하는 종교업자들, 관성적으로 깃발만 나부끼고 있는 남성 정규직 위주의 썩어빠진 노조 관료들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자본 권력’의 횡포는, 이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높디높은 성역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보수주의자 A 대신에 보수주의자 B가” 집권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설령 B가 자유주의적인 개혁 성향(예를 들자면 김대중, 노무현과 같은)의 인물이라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박노자의 진단이다.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 방식에 대한 그의 비판은 신랄한 듯 느껴지지만,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 진행된 ‘부동산 광풍’ ‘부에 대한 맹목적 추종’ ‘한미 FTA 추진’ ‘이라크 파병’ 등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화?보수화를 돌이켜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 <미녀들의 수다>에 출현한 핀란드 출신 여성 ‘따루’는 “한국의 좌파는 핀란드의 우파 같아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의 과제로 언급되어온 국가보안법 등의 악법 폐지, 각종 토착 비리 척결을 통한 관료제의 합리적 개선, 삼성과 조중동을 비롯한 대자본에 대한 국가적 견제,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 같은 목표들은 지난 자유주의 정권의 10년 집권 기간 동안 여지없이 실패했다. “자유주의적 ‘개혁론’의 기본적 문제점은, ‘자유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이상, 아주 ‘온건한’ 목표들도 사실상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슬픈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가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급진적인 ‘왼쪽’으로의 행진에 의해서만 어느 정도 빛이 있을 거라는 것이 박노자의 주장이다. 그 험난한 왼쪽으로의 행진 끝에 도달해야 할 곳은 “양육?교육?의료를 공동체가 책임지는 나라”로 표현될 수 있는, 공공성의 국가, 복지국가로의 대전환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를 흘리지 않는 선에서의 전면적인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급진적 개혁’을 통해서만 겨우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지금 한국의 현실을 보면 ‘제3의 길’이나 ‘기우뚱한 균형’,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간다’는 식의 중립지향의 언설은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하기가 불가능하다. 보수 언론과 극우 정권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중도’ 운운의 담론이고, 그런 이야기들은 그들이 구색 맞추기 정도의 용도로 써먹다가 현 시스템 안에서 수렴, 순치시키기 딱 좋은 먹잇감이 아닌가. 박노자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는 구호와 실천을 선명히 내세우는 까닭은, 워낙에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흐름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왼쪽으로 기울어져야 비로소 좌우의 날개를 갖고 나는 새의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류에 위험한, 불온한 흐름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중간 지점’에마저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타결될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먼저 부르는 게 흥정의 원칙이 아닌가?(p.72)” 박노자는 그 근거로 현실에서 복지국가의 모범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라는 고귀한 열매를 지배자들의 순순한 양보 하에 얻어낸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예로 든다. 가령 노르웨이 노동당의 왼쪽 흐름은 “구소련의 독재를 거부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혁명적 공산주의를 주장했었다. 그 정도의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 북구의 지배층이 불가피하게 양보를 해서 ‘복지 시스템’ 건설에 동의한 것이다.
    물론 ‘왼쪽으로의 행진’을 뒷받침해줄 여러 여건은 녹록치 않다. 외부 환경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내 진보 세력의 역량 자체가 미약한 게 사실이고, 현실적 지지 세력의 숫자도 절대적으로 소수이다. “가시밭길, 하지만 꼭 가야할 가시밭길”이라 인정하고 있듯이, 우선 진보 정당이 제대로 된 복지형 국가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현실적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라는, 멀기만 한 선행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근거한 ‘계급적 투표’ 관행이 한국 정치 메커니즘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각성의 실마리는 결국 현실에서 나올 것이다. 무수한 대학 졸업생들이 맥없이 ‘백수의 대열’에 서게 되는 까닭이 자신들의 ‘무능력’이나 ‘스펙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 각 개인과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교육비와 의료비 부담 수준이 임계 상황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오늘의 번듯한 자영업자가 내일의 철거민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 등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지펴낼 것이며, 그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왼쪽으로부터의 저항과 압박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게 박노자의 판단이다.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대한민국과 그 주변부에 대한 시선

    최근 ‘손바닥 아트’라는 장르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박재동 화백의 그림 가운데 하나는, 무심히 길을 걷다 동남아시아계 ‘이주 노동자’ 무리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아니 저것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떠들고 있나!’, 라고 짜증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엄청 놀랐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박 화백 자신 속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위계 의식이 있다는 부끄러운 발견!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 등 박노자의 책을 읽어온 많은 한국인들이 경험한 놀라움이 바로 같은 맥락의 것이 아니었을까? 박노자는 이번 책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에서도, 우리가 부끄러워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혹은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실 자체에 무지했던, 한국 사회의 폐부를 콕콕 찌른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보편적 한국인의 마음을 깊숙이 관리하고 있는 삼성 문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보다 ‘장난감 선물’에 더 의미를 두는 대다수 부모들의 의도적 무심함,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등 북방 사극 속에 담겨 있는 감성적 민족주의와 페니스 파시즘, 탈북자를 양산하는 북한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미국(약 19만 명)과 일본(약 5만 명) 등 30만 명에 육박하는 불법적 해외 체류자들인 ‘탈남자’의 존재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낙태를 문제시 하지 않는 한국의 종교인들, 진보 진영조차 빠지고는 하는 ‘신성한 국토’, 독도에 대한 주술 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한국 사회의 비이성적 빈틈과 타성을 박노자는 여전히 거침없이 짚어낸다. 더불어 이번 책에서는 지난 2008년 가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전 지구적인 중층의 시각, 소수 약자의 대변인을 상징하며 미국의 대통령이 된 ‘착한’ 오바마가 더 이상 ‘착할 수 없는’ 정책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세계 질서 내의 미국에 대한 속 깊은 성찰 등을 읽어낼 수 있다.
    그의 성찰과 글이 한국 사회에 여전한 울림을 주는 것은, 그것이 국외자의 별다른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라, 누구의 것보다도 치열한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매번 우리의 무딘 마음과 타성적 정신을 베어내는 칼날이 될지언정, 그 아픔으로 새롭게 세상에 대해 눈뜨는, 귀한 기회를 얻게 되지 않는가.

    책속으로 추가
    그런데 세상은 탈북자는 잘 알아도 탈남자들은 거의 모른다. 내가 이야기하는 탈남자란, 단순한 ‘공식적’ 이민 이외에 사회?문화 등 복잡한 이유로 비합법적 통로를 포함한 각종 통로를 통해서 남한을 떠난, 그리고 남한에 다시 오려고 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물론 중국에서의 탈북자와 법적으로 같은 위치에 있는 한국계 불법 체류자들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우리가 통상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북한의 종주국인 중국에 가 있는 탈북자의 수(약 20만 명)만큼이나 불법적 탈남자들(약 19만 명)이 남한의 종주국인 미국에 살고 있다. 탈북자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해외 언론들이 왜 그 탈남자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는 걸까? 거기다가 일본(약 5만 명) 등 세계 각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불법 체류자들을 다 합하면 30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 pp.178~179

    내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에서 살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러시아인 중 한 사람이 K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을 가르쳤던 Ts라는 분이었다. …… 그러다가 K대학교 재직 마지막 해에 한국어를 잘 아는 한 친구가 우연히 그의 인사 카드를 보게 되었는데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그 카드에는 그의 학력이 ‘학사’로 등재돼 있었고 그의 직급 및 급료 지급 기준도 마찬가지로 ‘학사 출신 원어민 전임 강사’로 찍혀 있었던 것이다. 꽤나 순진했던 그는, 10여 년 동안 자신의 월급이 한국 대학 위계서열에서 어느 ‘급’에 해당되는지 확인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월급을 훨씬 ‘덜’ 받았다는 것보다도, 박사로서의 학력이나 학자로서의 경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사실이 그의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입혔다. 그래서 그는 해당 학과 학과장부터 K대학교 총장에게까지 이 문제에 대한 서한을 발송해 지금까지의 ‘부당한 학력 불인정’에 대한 정정과 보상을 요청했다. 그에게 돌아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상사 중 한 사람이 그를 불러 “우리 학교를 위해 제발 이 문제를 묻어달라”고 이야기한 것이 전부였다. 10여 년간 한 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에는 그가 그래도 너무나 ‘소련적인’, 즉 ‘법리’보다 ‘온정’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래 소속 학교로 귀국해 돌아갔고 약 2년 후에 심장병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 pp.240~241

    오늘날 상당수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각각 ‘우리의 신성한 국토’라고 인식하는 독도, 대만, ‘북방 네 개의 섬’을 위해 심신을 다 바쳐 자기희생을 할 ‘애국적’ 각오를 보이고 있지만, 국토의 근대적 관념이 동아시아에 도입된 지 약 15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특정 국가의 지배 영역이라는 의미의 강역(疆域)은 이미 전통 시대에도 인지됐지만 그 사이의 경계선은 오늘처럼 절대시되지 않았다. 예컨대 18세기 말 이전까지의 일본 지도에서는 ‘일본’(즉, 에도 막부 통할 구역)의 영역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가 뚜렷하게 표시돼 있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경선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6세기의 ‘조선팔도지도’를 비롯한 상당수의 조선 지도에는 대마도가 ‘일본 영토’라는 표시 없이 그려진다. 대마도의 도주(島主) 소(宗)씨가 비록 조선에도 조공을 바쳐 형식상의 관직을 받기는 했지만 일차적으로 일본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조선에서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국경선을 표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토 귀속을 신성시하는 근대적 ‘국토’ 관념이 없었던 것이다. - pp.293~294

    집권 초기라서 불가피한 현상일까? <한겨레>와 같은 비교적으로 진보적 매체에서조차 오바마에 대한 온갖 ‘기대’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서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나는 ‘유색인종 출신의 최초의 대통령’에 대한 아주 당연한 친근감이고, 또 하나는 대중국, 대북 정책을 합리적으로 처리해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놓지 않을까하는 역시 “이유 있는” 기대 때문일 것다. 왜 “이유 있다”고 하는가 하면, 오바마가 ‘착해서’가 아니다. ‘착한 정치인’이라는 말 자체는 형용모순이지만(레닌이나 트로츠키 같은 이들도 ‘위대한 정치인’이라 할 수 있어도 ‘착한 사람’이라고 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인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직업 선택’의 문제이다. 나 역시도 다른 부분은 몰라도 오바마의 피부색만큼은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과연 명문고교-컬럼비아대 학부-하버드대 대학원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중산계층의 ‘반쪽’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백인보다 거의 세 배 가까운 20퍼센트의 빈곤율을 보이는 흑인사회 전체의 비참한 상황이 약간이라도 개선될 수 있겠는가? 미국도 우리처럼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인데, 학력·경제력이 약한 부모를 둔 탓에 출발점부터 불리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출세할 수 없는 이들의 고충을 해결하자면 빈민가 공립학교의 수준 향상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등 복지주의 정책을 활발히 펴야 할 것이다. 오바마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특히 GM 등 거대 재벌들이 공황의 파도에 떠밀려 파산으로 치닫고 있는 비상 상황에서 말이다. 최고 통치자가 흑인이 돼도, 미국의 사회·정치 구조상으로 ‘기업 복지’와 ‘민중 복지’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할 때 늘 전자를 선택하게 돼 있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직업 그 자체는 타자에 대한 살인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부분을 필수적으로 내포한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도 오바마가 벌써 20여 명의 민간인을 희생시킨 파키스탄 국경 마을에 대한 미사일 포격을 승인하지 않았는가? 그게 시작이고 앞으로는 그 규모가 계속 커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바마는 ‘제국주의 반대자’라기보다는 ‘똑똑한 제국주의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pp.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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