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금요일 ‘오래된 미래 세미나’

책 :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
영상 시청 : EBS 세계테마기행 김태용 감독의 베트남 종단 1800 KM 2부 -사파 가는길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까요? 영상이 참 마음이 아파요.

 

“나 여기 있소.”라는 말

 

- 감독은 이걸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 했지만, 라다크에 비추어 보면 이런 인식은 현대문명의 산물일지도. 라다크에선 개인은 혼자 분리, 단절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 내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 따라서 다른 사물, 관계들과 분리되어 자기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거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신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생활 내에서 나는 타인과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고, 드러내고 싶고 확인받고 싶어한다. 왜냐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필요 없는, 외톨이처럼 느껴지니까.

 

- 계속 끊임없이 어떻게 보일까가 의식되는 것 같다. 내가 이 공동체 안에서 아슬아슬하다고 느껴서 그럴지도 모르지. 공동체 안의 역할을 혼자 상상하면서 그것을 애써 해내려고 노력하는지도. 이것을 자의식 과잉? 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 나는 요새 이야기를 할 때 내 의도가 완벽하게, 어떤 상황에서도 자알, 상대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떤 방향으로든 문제없이 빠져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말이 길어진다. 앞에 이만큼의 밑밥(?) 을 깐 후 이야기를 한다.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생활. 상상이 안 간다.

나를 찾는다는 것이 없는, (근데 나를 찾는 과정은 있는 것 같아. 나를 찾는 과정이라는 것과 나 여기 있소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망은 다를 거 아닐까?)

 

- 자의식이 발현되지 않는 단계. 혹은 굉장히 진보한 상태의 인간. 우리랑 가까운 시기의 인간만 생각해도. 자의식이라는 것이 충분히 발현되어 있지. 대표적으로 전쟁. 그러나 또 끊임없이 성찰해왔던 인간이 있었던 것 같아. 종교인이 그 예가 되겠지. 무튼 인간이 그 단계로까지 간다면 굉장히 (진화론적인 것은 아냐) 성숙한 인간이 되는 거 아닐까.

 

- 지금의 문화를 보면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없게 하는 것 같다. 대학문화를 봐봐. 반문화. 연고전. 그 문화들이 다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고,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든 인정받아야 하겠다라는 각자의 감정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거 아닐까.

 

화. 화를 왜 내는 걸까.

 

- 앞부분. 그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별로 화를 안낸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초월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항상 화를 많이 내고 하는데..

 

- 여기서는 함께 살아야 한다. 라고 표현하지 않았나?

 

- 근데 화를 참는 게 더 문제 아니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화를 참는다는 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도 있지.

 

- 그럼 우리는 왜 화를 낼까?

 

- 남을 탓하게 될 때 화가 나는 것 같아. (응, 내가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거짓된 생각에 사로잡힐 때 화가 나기도 해) 근데 내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그 감정이 다른 사람한테 전해지나봐. 내가 그런 탓하는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이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

 

- 화는 상대적인 것들의 충돌인 것 같아.

 

- 아까 화를 참는 것이 더 안 좋을 수 있다는 말을 해서 이어보는 건데 라다크 사람들이 화를 안 내는 건 아마 말, 문화 자체가 상대성에 더 큰 강조를 두고 있는것 같다. 라다크 말은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전후맥락을 더 중시하도록 만든대. 특정한 상황에 따라서 특히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주제에 대한 상대적인 친밀도에 따라서 ‘이다. 있다.’의 스무가지나 되는 변형을 가지고 있대. 요런 문화가 자연히 상대방의 맥락을 살피도록 하는 거지.

 

- 항상 고민이 드는 건 공동체주의와 집단주의. 전체주의는 어떻게 다를까하는 것이야.

 

- 전체주의는 중심이 있는거지. 권력이 있어. 전체주의는 중심이 히틀러, 박정희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거고. 권력이 얼마나 수평적, 수직적인가에 따라서 그 둘이 나뉘어지겠지.

 

- 사실 지금 당장 이 때로 봤을 때 같이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부자유를 수반하는 걸지도 몰라. 혼자 지내는 게 편하는 사람들 있잖아. 실제로.

 

- 나도 집에서 나오니까 편하더라.

 

- 공동체주의의 중요한 포인트는 관용 - 화를 안 낸다 -이다. 상대방이 약속을 안 지켰을 때 화가 나잖아. 근데 그 때 상대방의 맥락을 생각하는거다. 근데 또 이러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가 없으면 그럴 새도 없이 더 짜증나고 화나게 된다. 또 비폭력대화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현대인들은 관찰보다는 평가를 한다. 수많은 개념어 특히 사회과학 하는 사람들은 무슨 주의로 연결되는 걸 좋아한다. 무슨 형 무슨 형.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을 실제로 관찰하긴 힘들게 된다. 그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할 수 없다. 사실 판단이라는 것은 진짜 무서운 거다. 냉혹한 거고.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에 기초한 작업이고 따라서 평가는 다른 사람에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될 수 있다. 관찰이 가능하려면 정말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유?

 

-동티모르 - 시계 핸드폰 없었다. 라다크에는 시간을 분 초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p. 57 : 시간은 느슨하게 측정된다. 분을 셀 필요는 절대로 없다. 그들은 내일 한잔에 만나러 올게 저녁 전에 라는 식으로 몇 시간이나 여유를 두고 말한다. 어두워진 다음 잘 때까지 라는 뜻의 ‘공그로트’ “해가산꼭대기에”라는 뜻의 ‘니체’ 해뜨기 전 새들이 노래하는 아침시간을 나타내는 ‘치폐 -치리트 등 다 너그러운 말들이다.)

 

-우리의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성찰을 이 사회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가 여유롭지 못하게 된 건 난 아파트 때문이라고 생각해. 전 사회의 시각 자체가 굉장히 근시안적으로 변한거지. 안 보여. 신중도 옥상에 갔는데 높아서 그런지 지평선이 보이더라. 좁은 공간에서 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사니까 삶의 방식이 매우 닥친 일에 매어서 살아가는 거지. 재수할 때도 그렇게 뒤처지는 것 같고 급하게만 느껴졌는데. 사실 별거 아니잖아. 그 시기의 우리는 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말야. 그런 순간을 참지 못하지. 취직을 못하거나, 졸업을 못하거나 등등.

또 컴퓨터 탓인 것 같기도 해. 잠시도 심심하면 못 참고. 자극적인 것을 mp3 컴퓨터를 통해 접하잖아. 사실 매일 뉴스를 보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 근데 사실 그런 뉴스에 항상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야.

 

- 그래서 내가 담배를 못 끊었다고 생각해. 담배를 피는 순간은 할 일이 없는 순간이야. 담배가 아니면 쉴 수가 없는 거야. 쉬려면 도구가 있어야 돼. 요즘에는 담배를 안 폈지. 쉴 시간이 없었어.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대안이 담배였던 것 같고.

 

- 근데 지금 사회를 살면서, 100% 여유롭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냥 여유롭게 살려고 최대한 노력해 보는 거지. 만약 100이라면 50 정도. 적은 부분이라도 얼마나 여유롭게 살아볼까를 노력하는 거지. 사실 바쁘면서도 여유가 있을 수 있잖아. 가끔 순간순간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고

 

- 요새는 여유를 사고파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

 

- 이 사회를 즐기는 사람은 정말 여유로운 사람일까. 바쁜 거를 즐기는 사람도 있잖아. 예를 들어 자기 스펙 쌓는 게 너무 즐거운 거야.

 

- 근데 그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가 삭제된 삶이겠지. 실제로 그는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고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왜 저 사람들은 이렇게 살지 못하지? 하는 생각을 가질 지도 몰라.

 

욕망, 돈.

 

- 사실 근데 여유를 이야기 할 때, 지금의 경제구조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여유롭지 못하게 하는 지금의 경제구조. 그렇지 않고 그냥 여유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그냥 개인적으로 여유로운 마음을 갖자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감독의 통찰력이 대단한 것 같아. 빵이 500원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걸 만들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거라는 말.

 

- 사는 방식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 비슷하다. 농업이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 살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은 안 느낄 것이다. 사실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한 것이다. (잠깐 생각났는데 빨간 브랜드 운동화와 플라스틱 구두)

 

- 영상을 보면 그들은 왜 돈을 벌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영상에서 어른이든 아이든 길에 나와 돈을 벌려고 하지만 왜 버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 같아.

 

- 갑자기 생각난 건데 내가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섬 전체가 광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 있었다. 그 사람들도 영상 사람들 처럼 잘 살고 있었는데 서구 사회에서 바라보기엔 그 광물들이 정말 탐이 났던거지. 그래서 명품, 자동차 이런 것을 그 섬에 넣어서 그 섬 사람들이 그걸 갖고 싶어하도록 한거야. 광물을 팔아서 그걸 갖고 싶게 하도록. 그렇게 섬 사람들은 광물을 다 팔고, 광물은 없어지고, 그에 따라 서구의 관심도 잃어갔지. 그리고 결국 자립할 수 없게 된 거야. 이 섬의 예는 서구에서 일부러 허영심을 키워준거였지만 라다크에서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잖아. 그렇다면, 그런 욕망들은 인간의 본성? 인가.

 

- 이 책에도 이와 비슷한 고민들이 등장한 것 같긴 했다. 책에서는 서구 사회의 개발과 진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파괴를 용이하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면서. 본성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구조로 인해 그 욕망을 최대로 추구하도록 만든다고 되있었던 듯.

 

- 경제적인 것만 보지 않고 이슬람 지역의 여성할례를 한 번 보자. 이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개입해서는 안된다와 문화상대적인 시각에서 여성인권에 관련된 근대적 문화를 전파하되 선택은 그들이 하게 한다. 즉 비판적 수용을 하게 한다. 이것처럼 그런 경제적인 것들이 라다크에, 그리고 영상의 마을에 들어갔을 때 비판적 수용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 근데 비판적 수용을 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욕망이 불러일으킨 문제들에 대해서는 삭제된 채 들어간 거지. 사실 서구사회도 무조건 행복하진 않잖아. 마냥 좋지도 않고. 지금 생겨나는 문제들과 불행한 사람의 모습들... 같이 그냥 좋은 물건으로 설명될 수 없는 여러 모습들이 존재하는데 일단 라다크 사람들에 눈에는 관광객들이 좋은 물건, 카메라,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니는 모습만 보이는 거지. 그 순간에는 그냥 저것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만 들지도. 이 책에서도 호지가 서구 문명을 우상시 하는 라다크 젊은이들에게 서구사회의 지금 문제들을 이야기해줬더니 너무 놀라더라. 라고 써 있었어.

 

- 본성은 모르겠는데 적어도 지금의 인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체제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주도적인 것 같아. 지금의 인간에게는 자본주의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거지. 그래서 의식의 변화. 개인이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냐 라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아.

 

(그냥 이건 서기하다가 생각난 것인데, 지금 사회는 그걸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을 길러내도록 하는 것 같아. 그냥 지금의 인간이 자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 의식의 변화라는 건 그냥 개인적으로만 일어날 수 없다는 거지.)

 

- 이 책에 라다크를 개발하려는 사람이 말했지 이 사람들이 더 탐욕스러워 지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 라다크가 개발될 거라고.

 

- 사회주의국가 베트남만 가도 사회주의는 나쁘다라고 이야기한다. 뭐 사실 그렇게 열심히 그 체제에 대해서 평소에 생각하는 것이 아닐텐데도 말야. 자연스레 좋다고 말하는 체제, 국가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그런 자본주의 나라랄까. 미국은 좋다라고 말하는거야.

 

- 남한으로 온 북한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지 남한도 딱히 좋은 건 없네. 라고. 뭐 인권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이런 말도 하더라. 남한 사람들이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고.

 

- 아 그래서 생각난 건데 우리학교라는 영화에서 나온 조총련계열 학생들은 북한의 사회가 더 로망인거지. 민족정체성을 받아주는 공동체가 필요한 거야. 그 친구들은 일본 시장사회를 경험했지만 북한을 경험하면서 보았던 모습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던 거야. 근데 그들이 들어오는 순간 극우 단체들이 입국불가. 뭐 이런 시위(?)를 해서 그 친구들은 배 안에서 한복을 그냥 츄리닝으로 갈아입었어.

 

- 확실히 남한 사람들이 행복해보이진 않아.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야기들.

 

- 살고 싶은 마을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은 재미없게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슬프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난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되는 마을에서 살고 싶다. 누구나 다 작가, 시인, 가수가 되어서 살 수 있는 마을. 라다크 마을처럼 지금 자본주의 이 사회를 당장 바꿀 순 없는 것 같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나는 하루하루를 예술가처럼 살 수는 없을까. 각자 고민하는 것, 운동마저 예술처럼, 지금 별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접근하는 방법은 예술인 것 같다.

 

- 류감독(DJ Festival 총감독)도 비슷한 이야기하시던데. 여기 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술가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 난 갑자기 장기하가 생각났어. 네가 깜짝 놀라고 두 다리 쫙 피고 잠들지 못할 이야기 이지만 난 별일 없이 산다. 근데 하루하루가 즐거웁다.

 

- 나는 별일 없이 살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시간 없이 여유 없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렇다면 행복할지도.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맘 편하게 살 때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

 

- 근데 하기 싫은 걸로 채워지는 건 정말 안 좋은 것 같아. 영어 같은 거.

 

- 그냥 빈 시간을 못 견뎌서 다 채워놓는 걸 수도 있어. 그래서 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못 찾는 것 같기도 하고.

 

- 근데 뭐 사실 바쁨과 여유도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 영어 같은 건 (하기 싫어도 해야하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방향을 찾는 것도 좋은 것 같아. 난 미드.

 

- 그 아까 예술이야기를 이어보자면 라다크는 정말 예술이 넘쳐나는 곳이지. 노래와 시, 이야기 등등.

 

- 개관의 의미로 라다크를 골랐는데, 오히려 개인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 같네. 좋다. 마을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이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 하다가 작은 단위, 큰 단위 이야기가 나왔지.

 

- 큰 단위에서 작은 단위로 제도화는 어떻게 생각해?

 

- 뭐 그것 + 아까 공동체주의이야기 + 할례이야기를 함께 이야기 하자면 (얼마나 전통적인 지도 궁금한데.......) 악습, 인습이 많다고 여겨지는 국가들은 대부분 이슬람 국가가 많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등. 이슬람 역사에 대해서 이슬람 사회에 대해서 꿰뚫고 있는 사람이. 한 말인데 이슬람의 공동체의 문화이고 서구의 문화는 법칙의 문화다. 그래서 전자에서는 사실, 어떤 전통, 법칙이 딱 있어서 무조건 이것을 하는 그런 개념이 없다. 그냥 상황, 그 공동체에 따라 유연하게 어떤 일들이 이뤄져 왔다. 그 할례라는 것도 이슬람 사람들은 사실 있는지도 모르게 이뤄지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서구권력이 이슬람의 남성권력과 만나면서 - 탈레반 등이 생겨나면서 - 서구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그 이슬람 내 권력은 자신들의 문화, 혹은 전통이라는 것을 더 극명히 드러내보이기 위해 더 법칙의 문화를 차용했고 할례같은 것도 극대화 된거지. 원래는 법을 잘 지키는 문화가 아니었던 거야. 서로 이해해주고. 그냥 그렇게. 서구 로마의 성문법을 보자면 공평을 이야기하면서 비인격적인 제도를 절대화하잖아. 오히려 이게 더 위험할 수 있는 거지.

 

- 응, 그 전통이라는 게 만들어지는 과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어. 왜 셀프오리엔탈리즘이란 것도 있잖아. 외국인이 한국적인 가정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 집에서는 한 밤중에 한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대. 그 외국인을.

- 오, 그 할례이야기를 들으니까 그 큰 단위에서의 제도화라는 것도 권력이 생기니까 작은 단위를 더 망가뜨릴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네.


- 작은 단위 큰 단위 이야기하니까 공정무역이 생각난다. 공정무역은 세계화의 문제를 세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게 공정무역 아니야? 그것의 문제. 월드뱅크가 커피를 심은 거랑.... 시민사회가 커피를 심은 거랑.....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 결국 그 공동체는 자립하지 못하는 거 잖아. 무역자체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대안이 아닐 수도 있지. 결국 우리의 욕구는 줄이지 않는 다는 거지. 사실 바나나, 커피. 우리가 안 먹을 수도 있잖아.

 

- 그래도 어쨌든 다르지 않겠어? 시민사회의 경우 지금 당장은 그 사회 자체가 자립할 수는 없겠지만 공정무역을 해가면서 자립해가는 과정을 밟는 거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 응 물론, 지금 상황에서 공정무역은 의미가 있다고 봐.

 

- 붕괴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그 영상의 끝 부분, 밤거리에서 만난 셋. 그런 말들을 심지어 영어로 한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어, 맞아맞아, 다양한 리액션들) 베트남에 있을 때 사람들이 사장님, 오빠 사랑해요. 막 이런 말을 했다. (으악) 그 당당해보였던 가이드의 가족이 마지막에 수공예품을 보여주며 보였든 표정들...그냥 라다크 책에서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한 충격이다. 돈의 힘에 눌린 그들의 표정이 보이더라 그냥.

 

- 에코투어? 사실 잘 모르겠어. 일단 우리가 이런 모습을 하고 가는 것 자체도 많은 혼란이지 않을까.

 

- 음, 그건 잘 모르겠어. (그래서 완전히 교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이었나?)

 

- 어쨌든 이 공동체가 자원이 부족하고 가난하긴 하잖아. 날씨도 엄청 춥고

 

- 아 근데, 그들은 춥고 가난하다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았지. 부족한 자원이지만 충분히 자신의 생활에 맞게 민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거야. 물도, 추위도.

 

- 난 폴라니 책을 읽으면서 엄청 감동받았는데

공동체 경제 안에서는 굶주림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없었대. 사람들이 굶주림에 대해 고민한 것은 자본주의 이후래. 또 칼 폴라니의 인간관은 절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거지. 사람들이 거래를 시작한 것은 호혜의 관계에서부터 생겨난거래.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인 거지.

 

- 가족과 결혼 이야기

 

- 개발, 현재 사회와 우리가 느낀 것의 접점 찾기.

 

-  교육 이야기도 재밌었는데.................

 

- 쉐어링, 짝짝짝. 다음 시간엔 여성영화제.